경상남도 합천의 가야산 속에는 해인사라는 절이 있어요. 이 절의 오래된 건물 안에는 글자가 빼곡히 새겨진 나무판이 8만 장이 넘게 꽂혀 있어요. 바로 팔만대장경이에요. 가을이면 단풍 든 가야산을 오르며 이 나무판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요. 경판을 한 줄로 이으면 50km가 넘는대요. 고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겼을까요?
팔만대장경 한눈에 보기
- 경판 수 8만 1천 장이 넘어요.
- 글자 수 5천만 자가 넘어요.
- 만든 기간 1236년 무렵부터 약 16년
- 한 장 크기 가로 약 70cm, 세로 약 24cm
- 한 장 무게 3kg 남짓
- 있는 곳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
대장경은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들을 한데 모은 것이에요. 고려 사람들은 불교를 깊이 믿었어요. 그래서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치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성껏 새기면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지요. 대장경을 만드는 일은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기도 했어요.
고려에는 원래 먼저 만든 대장경이 있었어요.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오랜 세월에 걸쳐 새긴 대장경이었지요. 그런데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 대장경이 불에 타 버리고 말았어요. 고려 사람들은 전쟁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장경을 다시 만들기로 했어요. 이것이 지금 해인사에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이에요. 이렇게 다시 새긴 대장경이라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불러요.
전쟁 속에서 시작한 큰일
그 무렵 고려의 조정은 몽골군을 피해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뒤였어요. 조정은 대장경을 만드는 일을 맡을 관청인 '대장도감'을 두고, 남해 지역에도 일을 나누어 맡는 곳을 두었다고 해요. 나무를 베는 사람, 판자를 다듬는 사람, 글씨를 쓰는 사람, 글자를 새기는 사람, 틀린 곳을 살피는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일에 힘을 보탰어요.
전쟁이 이어지는 어려운 때였는데도 일은 멈추지 않았어요. 1236년 무렵 시작한 일은 약 16년 뒤인 1251년에 마무리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을 때,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며 긴 세월을 버틴 사람들의 끈기가 놀라워요.
나무판을 만드는 긴 과정
글자를 새기려면 먼저 좋은 나무판이 있어야 해요. 사람들은 산벚나무, 돌배나무 같은 나무를 베어 판자로 켰어요. 이런 나무는 결이 고르고 단단해서 글자를 섬세하게 새기기 좋아요. 오늘날 과학자들이 경판의 나뭇결을 조사해 보니 산벚나무로 만든 판이 가장 많았다고 해요. 산벚나무는 우리 산에 흔하고, 너무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아서 칼이 잘 들어갔을 거예요. 판자로 켤 때는 나무의 옹이나 갈라진 곳을 피해서, 흠 없는 부분만 골라 썼어요. 경판 하나를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차례로 살펴볼까요?
경판 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
- 나무를 베어 판자로 켜요.
-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담갔다가 그늘에서 오래 말렸다고 해요.
- 종이에 글씨를 써서 판자에 뒤집어 붙여요.
- 칼로 글자를 한 자씩 도드라지게 새겨요.
- 옻칠을 하고, 양쪽 끝에 마구리를 대요.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나무를 바닷물에 담가 두거나 소금물에 삶은 다음, 그늘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말렸다고 해요. 이렇게 하면 나무 속의 진이 빠지고, 나무가 잘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아요. 급하게 말리면 나무가 휘어 버려서 여러 해를 참고 기다려야 했어요.
다음에는 종이에 글씨를 정성껏 써서 나무판에 뒤집어 붙이고, 칼로 한 글자씩 새겼어요. 도장처럼 찍어야 하니까 글자는 거꾸로 새겨야 했지요. 글자 둘레의 나무를 깎아 내어 글자만 도드라지게 남기는 거예요. 판의 앞면과 뒷면 모두에 글자를 새겼어요.
다 새긴 판에는 옻칠을 하고, 양쪽 끝에는 마구리라는 나무를 대어 판끼리 부딪혀도 글자가 상하지 않게 했어요. 마구리 덕분에 경판을 여러 장 세워 꽂아도 글자 면이 서로 닿지 않고, 판 사이로 바람도 지나갈 수 있어요. 네 귀퉁이에는 구리판을 대어 튼튼하게 했지요.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이렇게 새긴 글자는 모두 5천만 자가 넘어요.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새긴 글자가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고르고, 틀린 글자도 아주 적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감탄해요. 한 글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정성을 들였어요.
내용이 정확한 것도 큰 자랑이에요. 수기라는 스님이 앞서 만든 고려의 대장경과 송나라, 거란의 대장경을 한 줄씩 견주어 보며 틀린 곳을 바로잡았다고 해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은 지금 남아 있는 한자 대장경 목판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것으로 손꼽혀요. 다른 나라 학자들도 불교 경전을 연구할 때 이 대장경을 귀하게 참고해요.
경판 한 장을 들여다보면
경판 한 장을 가까이에서 보면 글자가 가로세로 줄을 맞추어 빽빽하게 새겨져 있어요. 판의 한쪽 끝에는 이 판이 어느 경전의 몇 번째 권, 몇 번째 장인지 알려 주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오늘날 책의 쪽 번호와 같은 구실이에요. 덕분에 8만 장이 넘는 판 가운데에서도 필요한 판을 찾아 차례대로 찍을 수 있었어요.
어떤 경판에는 그 판을 새긴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해요. 학자들은 이런 이름을 모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참여했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이름을 남긴 사람 가운데에는 스님도 있고 보통 백성도 있었다고 해요. 800년 전 누군가가 칼을 들고 한 글자씩 새겨 넣은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대장경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대장경을 옛 인도 말로는 '트리피타카'라고 해요. '세 개의 바구니'라는 뜻이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 갈래로 나누어 담았기 때문이에요. 첫째는 부처님이 들려준 가르침, 둘째는 스님들이 지켜야 할 규칙, 셋째는 뒷날 학자들이 가르침을 풀이하고 연구한 글이에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 남을 돕고 생명을 아끼는 법 같은 이야기가 가득해요. 부처님이 전생에 여러 동물로 태어나 착한 일을 했다는 옛이야기도 담겨 있지요.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옛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알려 주는 귀한 기록이에요.
찍어 내는 책, 옮겨 온 책
경판은 그 자체로 읽는 책이 아니라 책을 찍어 내는 판이에요. 판 위에 먹을 고르게 바르고 종이를 얹어 문지르면 글자가 종이에 옮겨져요. 이렇게 한 장씩 찍은 종이를 모아 묶으면 책이 되지요. 판이 남아 있으면 필요할 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있어요. 손으로 한 권씩 베껴 쓰던 때와 비교하면 아주 놀라운 방법이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대장경을 찍은 책을 얻어 가기도 했어요. 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팔만대장경은 처음부터 해인사에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고려 때 몽골군을 피해 도읍을 옮겨 두었던 강화도를 중심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조선 초에 지금의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8만 장이 넘는 무거운 경판을 먼 길로 옮기는 일도 무척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인쇄 기술이 앞섰던 나라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인쇄 기술이 뛰어났어요.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때 찍은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목판 인쇄물 가운데 아주 오래된 것으로 손꼽혀요.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찍는 기술이 고려에 이르러 팔만대장경이라는 큰 열매를 맺은 거예요.
고려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나무판은 한 권의 책만 찍을 수 있지만, 글자를 하나씩 따로 만들면 글자를 이리저리 옮겨 조판해서 여러 가지 책을 찍을 수 있어요. 고려 사람들은 금속으로 이런 활자를 만들어 썼고, 1377년에 금속 활자로 찍은 『직지』는 지금 남아 있는 금속 활자 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오래 지켜 온 비밀, 장경판전
나무는 습기에 약해요. 축축하면 썩거나 벌레가 생기고, 너무 마르면 갈라져요. 그런데 팔만대장경은 경판이 8만 장이 넘는데도 수백 년 동안 거의 상하지 않았어요. 그 비밀은 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판전에 있어요. 장경판전은 앞뒤로 나란히 선 긴 건물 두 채와 양쪽 끝의 작은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어요. 안에는 여러 층으로 된 나무 선반이 줄지어 있고, 경판이 책처럼 세워져 꽂혀 있어요.
장경판전의 창문을 잘 보면 크기가 서로 달라요. 앞쪽 벽은 아래 창이 크고 위 창이 작고, 뒤쪽 벽은 거꾸로 위 창이 크고 아래 창이 작아요. 이렇게 하면 들어온 바람이 건물 안을 골고루 돌아 나가서 통풍이 잘돼요. 또 바닥 흙에는 숯과 소금, 석회 같은 것을 섞어 넣었다고 전해져요. 비가 많이 오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날이 가물면 습기를 내놓아 안쪽을 알맞게 지켜 주었지요.
건물이 선 자리도 잘 골랐어요.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도 높은 곳에 있어서 햇볕이 잘 들고, 산골짜기를 따라 부는 바람이 건물을 스치고 지나가요.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지만, 자연의 바람과 햇볕, 흙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지은 과학적인 건물이에요.
경판을 지켜 온 사람들
해인사에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불이 났어요. 그런데도 장경판전은 신기하게 무사했다고 해요. 6·25 전쟁 때에는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공군 조종사가 대장경을 지키려고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1970년대에는 경판을 더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지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시험 삼아 옮겨 본 경판에 문제가 생겨서, 경판은 결국 옛 장경판전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오늘날의 기술로도 옛 건물의 지혜를 쉽게 따라잡지 못한 셈이에요. 지금도 해인사에서는 경판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며 보존하고 있어요.
세계가 함께 지키는 보물
오늘날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팔만대장경판은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정해졌어요. 건물과 그 안에 든 경판이 함께 세계의 보물이 된 거예요. 팔만대장경은 옛사람들의 믿음과 끈기, 그리고 자연을 잘 이해한 지혜가 함께 담긴 보물이에요. 나무판 한 장 한 장을 지켜 온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답니다.
나도 판화를 찍어 보아요
경판이 어떻게 글자를 찍어 내는지 직접 알아볼 수 있어요. 지우개에 연필로 내 이름의 첫 글자를 거꾸로 그리고, 어른과 함께 글자 둘레를 조금씩 파내 보세요. 조각칼은 몸 바깥쪽으로 밀어요. 글자 부분에 물감이나 스탬프 잉크를 묻혀 종이에 꾹 누르면 바르게 선 글자가 찍혀 나와요.
한 글자만 새겨도 손이 꽤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릴 거예요. 그 작은 경험을 떠올리며 5천만 자가 넘는 글자를 새긴 고려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해인사를 찾을 기회가 생긴다면, 장경판전의 크고 작은 창문과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꼭 느껴 보세요.
해인사에 가면
해인사에 가면 장경판전 앞에 설 수 있어요. 소중한 경판을 지키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대개 막혀 있지만, 나무 창살 사이로 줄지어 선 선반과 경판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어두운 건물 안에 빽빽이 꽂힌 나무판을 보면, 사진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거예요.
창문 앞에 서서 바람이 어느 쪽에서 들어와 어느 쪽으로 나가는지 느껴 보세요. 아래 창과 위 창의 크기도 직접 비교해 보고요. 경판을 지키는 비밀을 알고 보면 소박한 나무 건물이 훨씬 대단해 보일 거예요. 해인사 근처에는 대장경에 관해 전시하는 곳도 있어서, 경판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