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부는 날, 호호 불어 가며 먹는 군고구마와 군밤은 정말 달콤해요. 설탕을 한 숟갈도 넣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까요? 비밀은 고구마와 밤 속에 들어 있는 녹말에 있어요.

고구마와 밤의 저금통, 녹말

식물은 잎에서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들어요. 쓰고 남은 양분은 다음을 위해 모아 두지요. 이때 양분을 녹말이라는 모양으로 바꾸어 저장해요.

고구마는 땅속의 뿌리에, 밤은 열매 속에 녹말을 잔뜩 모아 두어요. 고구마는 이 녹말로 다음 해에 새싹을 틔우고, 밤은 땅에 떨어져 싹이 틀 때 이 녹말을 써요. 다람쥐가 가을에 도토리와 밤을 부지런히 모으는 것도, 그 속에 든 녹말이 겨울을 버티게 해 주는 든든한 먹이이기 때문이에요. 녹말은 식물의 저금통인 셈이에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고구마와 감자는 둘 다 땅속에서 캐지만, 고구마는 뿌리가 굵어진 것이고 감자는 줄기가 굵어진 것이에요. 생김새는 비슷해도 식물의 다른 부분이지요.

식물은 왜 달콤한 당을 그대로 두지 않고 녹말로 바꾸어 저장할까요? 당은 물에 잘 녹아서 한곳에 많이 모아 두기 어려워요. 녹말은 물에 잘 녹지 않아서 작은 알갱이로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지요. 설탕물을 병에 담아 두는 것보다 쌀가마니에 쌀을 쌓아 두는 편이 훨씬 많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해요.

그런데 녹말은 그 자체로는 거의 달지 않아요. 밥이나 생감자를 먹을 때 설탕처럼 달게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아요.

녹말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

음식에 녹말이 들어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녹말에 아이오딘 용액을 떨어뜨리면 청람색으로 색이 바뀌거든요. 과학 시간에 감자나 밥에 떨어뜨려 본 친구도 있을 거예요. 생고구마를 얇게 썰어 떨어뜨려 보면 금세 짙은 색으로 물들어요. 고구마 속에 녹말이 가득하다는 증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잘 구운 군고구마에 떨어뜨렸을 때예요. 생고구마보다 색이 덜 진하게 바뀌는 곳이 생길 수 있어요. 녹말 가운데 일부가 당으로 바뀌어서 그래요. 아이오딘 용액은 먹으면 안 되고 눈이나 피부에 닿지 않게 해야 하니, 실험은 꼭 선생님이나 어른과 함께해요.

녹말이 당으로 바뀌어요

녹말은 아주 작은 당 알갱이들이 긴 사슬처럼 줄줄이 이어진 물질이에요. 사슬로 이어져 있을 때는 혀가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해요. 그런데 이 사슬이 끊어져서 작은 당으로 풀려나면 달콤한 맛이 나요.

사슬을 끊는 일은 효소가 해요. 효소는 가위처럼 녹말 사슬을 싹둑싹둑 잘라 당으로 바꾸어요. 고구마와 밤 속에도 이런 효소가 들어 있어요.

밥을 오래 씹으면 달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우리 침 속에도 녹말을 당으로 바꾸는 효소가 있어서 그래요. 고구마와 밤이 달콤해지는 원리도 이와 비슷해요.

그렇다면 효소는 어떻게 녹말만 골라 자를까요? 효소는 저마다 맞는 짝이 정해져 있어요. 열쇠가 꼭 맞는 자물쇠만 열 수 있는 것처럼, 녹말을 자르는 효소는 녹말만 잘라요. 우리 몸에도 고기를 잘게 부수는 효소, 기름을 부수는 효소처럼 여러 가지 효소가 저마다 맡은 일을 해요. 우리가 먹은 음식이 몸에 쓰일 수 있는 것도 이 효소들 덕분이에요.

천천히 구우면 더 달아요

고구마를 불에 올리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효소가 부지런히 일하기 시작해요. 효소는 뜨겁지만 너무 뜨겁지는 않은 온도에서 가장 잘 일해요. 그래서 센 불에 빨리 익히는 것보다, 약한 불에서 천천히 구우면 효소가 녹말을 당으로 바꿀 시간이 길어져서 더 달콤해져요.

군고구마 껍질에 끈적끈적한 꿀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있는 것을 본 적 있나요? 녹말에서 풀려난 당이 흘러나오다가 불에 졸아서 생긴 거예요. 달콤한 냄새도 이 당이 뜨거운 열을 받아 살짝 그을릴 때 퍼져 나와요.

고구마를 전자레인지로 빨리 익히면 어떨까요? 전자레인지는 고구마 속을 아주 빨리 뜨겁게 만들어요. 그러면 효소가 일하기 좋은 온도를 금방 지나쳐 버려서, 오래 구운 고구마보다 덜 달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효소도 너무 뜨거워지면 모양이 망가져 더 이상 일하지 못하거든요.

알아 두기

고구마 속 효소는 대략 60~70도쯤에서 부지런히 일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군고구마 장수가 드럼통 같은 화덕에 고구마를 넣고 오랫동안 은근히 굽는 것도, 고구마 속이 이 온도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지혜예요.

익히는 방법에 따라 단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리해 보면 이래요. 같은 고구마라도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신기하지요?

익히는 방법걸리는 시간단맛
약한 불에 천천히 굽기길어요가장 달아요
찌거나 삶기중간달아요
전자레인지로 빨리 익히기짧아요덜 달 때가 많아요

두었다 먹으면 더 달아요

고구마는 캐자마자 먹는 것보다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알맞은 곳에 두었다 먹으면 더 달아져요. 그동안에도 고구마 속 효소가 녹말을 조금씩 당으로 바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확한 고구마를 바로 팔지 않고 한동안 저장해 두었다가 내놓기도 해요.

밤도 서늘한 곳에 두면 단맛이 늘어나요. 밤은 추위를 느끼면 녹말을 당으로 바꾸어 모아 두는 성질이 있어요. 물에 당이 많이 녹아 있으면 맹물보다 잘 얼지 않아요. 밤이 추울 때 당을 모으는 것도 얼어서 상하지 않으려는 방법이라고 여겨져요. 겨울을 견디려는 밤의 작전이 우리에게는 달콤한 선물이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고 고구마를 냉장고에 넣으면 안 돼요.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너무 차가운 곳에 두면 쉽게 상해요. 신문지에 싸서 바람이 잘 통하고 춥지 않은 방에 두는 것이 좋아요. 고구마는 조금 따뜻하게, 밤은 조금 차갑게. 둘은 좋아하는 온도가 서로 달라요.

밤은 냉장고의 채소 칸처럼 서늘한 곳에 두면 좋아요. 다만 밤은 벌레가 들어 있기도 하고 금방 마르기도 해서, 주워 오거나 사 온 뒤 오래 두지 말고 알맞은 때에 먹는 것이 좋아요. 보관할 때는 신문지나 봉지에 담아 마르지 않게 해요. 좋아하는 온도를 맞춰 주면 고구마와 밤이 스스로 단맛을 늘려 준답니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고구마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익혔을 때 속이 포슬포슬하고 조금 퍽퍽한 밤고구마, 속이 주황빛이고 촉촉하며 물렁한 호박고구마, 속이 보랏빛인 자색고구마 같은 것이에요. 자색고구마의 보랏빛은 포도나 블루베리처럼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이에요. 밤고구마는 녹말이 많아서 밤처럼 포슬포슬해요. 호박고구마는 물기가 많고 단맛이 강해서 더 촉촉하고 달게 느껴지지요.

밤고구마는 김치나 우유와 함께, 호박고구마는 그냥 먹거나 빵과 과자에 넣어 먹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 집 식구들은 어떤 고구마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세요. 좋아하는 까닭을 들어 보면, 포슬포슬함과 촉촉함 가운데 어느 쪽을 좋아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고구마는 줄기를 심어 키워요

고구마를 키울 때는 씨앗을 뿌리지 않아요. 봄에 고구마에서 자라난 줄기, 곧 고구마순을 잘라 밭에 꽂아 심어요. 줄기를 심으면 흙 속에서 새 뿌리가 나오고, 그 뿌리 가운데 몇 개가 여름 내내 녹말을 모으며 통통하게 부풀어 고구마가 돼요.

잎은 땅 위로 길게 뻗어 나가며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들어요. 그 양분이 줄기를 따라 땅속으로 내려가 녹말로 쌓이지요. 그래서 잎이 무성하게 햇빛을 많이 받은 해에는 고구마가 알차게 들어요. 서리가 내리기 전인 가을에 캐는데,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기면 땅속에서 고구마가 줄줄이 딸려 나와요. 고구마 줄기는 나물로 볶아 먹기도 해요.

고구마는 먼 길을 건너왔어요

고구마는 원래 아메리카 대륙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던 식물이에요. 그것이 바다를 건너 여러 나라로 퍼졌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시대에 들어왔어요. 1760년대에 일본에 갔던 통신사 조엄이 쓰시마섬에서 고구마를 보고 들여왔다고 알려져 있어요.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모자랄 때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는 귀한 작물이 되었어요. 고구마라는 이름도 쓰시마섬에서 부르던 이름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가 먹는 군고구마 한 개에 먼 바닷길을 건너온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에요.

밤송이 속 밤 삼 형제

밤은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오래전부터 자라 온 나무 열매예요. 밤은 가시가 촘촘한 밤송이 속에서 자라요. 밤송이 하나에는 보통 밤이 한 톨에서 세 톨쯤 들어 있어요. 가을이 되어 다 익으면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지고, 반짝이는 갈색 밤이 툭 떨어져요.

밤나무는 초여름, 6월 무렵에 꽃을 피워요. 가늘고 긴 꼬리 모양의 크림색 꽃이 가지마다 늘어지고, 꽃이 필 때면 산에 독특한 냄새가 퍼져요. 꽃이 지고 나면 작은 초록 밤송이가 맺히고, 여름 내내 햇빛을 받아 만든 양분이 밤송이 속 알맹이에 녹말로 차곡차곡 쌓여요. 그렇게 넉 달쯤 지나 가을이 되면 우리가 아는 통통한 밤이 되지요.

밤은 껍질이 두 겹이에요. 딱딱하고 반들반들한 겉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떫은맛이 나는 얇은 속껍질이 알맹이를 꼭 감싸고 있어요. 밤을 삶거나 구워 먹을 때 속껍질을 잘 벗겨야 달콤한 알맹이만 먹을 수 있지요. 밤을 구울 때는 겉껍질에 칼집을 꼭 내요. 칼집이 없으면 속의 김이 빠져나가지 못해 밤이 '펑' 하고 터질 수 있어요. 칼집 내기는 어른에게 부탁하세요.

산에서 밤을 주울 때는 조심할 것이 있어요. 산에도 주인이 있어서, 함부로 주우면 안 되는 곳이 많아요. 또 떨어진 밤과 도토리는 다람쥐 같은 숲속 동물들의 소중한 겨울 먹이예요. 밤 줍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정해진 곳에서만 줍고, 가시에 찔리지 않게 장갑을 끼고 발로 밤송이를 살살 벌려서 꺼내요.

가을 식탁의 고구마와 밤

고구마와 밤은 여러 음식에 쓰여요. 밤은 밥에 넣어 밤밥을 짓고, 찹쌀에 대추와 함께 넣어 약밥을 만들어요. 추석 송편 속에 밤을 넣기도 하지요. 설탕을 넣고 졸여 달콤한 밤조림을 만들기도 해요.

고구마는 쪄서 먹고 구워서 먹고, 얇게 썰어 볕에 말려 쫄깃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기도 해요. 말리는 동안 물기가 빠지면서 단맛이 한데 모여 더 달게 느껴져요. 찬 바람이 불면 길거리에 군고구마 화덕이 나타나던 모습은 오랫동안 겨울을 알리는 풍경이었어요. 우리 동네에서도 군고구마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나요?

우리 집 부엌에서 알아봐요

  • 삶은 고구마와 오랫동안 천천히 구운 고구마를 한 입씩 맛보고, 어느 쪽이 더 단지 비교해 보세요.
  •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천천히 오래 씹어 보세요. 단맛이 느껴지나요?
  • 사 온 날 먹은 고구마와 일주일쯤 서늘한 곳에 두었다 먹은 고구마의 맛을 공책에 적어 비교해 보세요.
  • 밤과 고구마의 단면을 그려 보고, 녹말이 어디에 모여 있을지 짐작해 보세요.
  • 고구마 한쪽 끝이 물에 잠기게 컵에 올려 두고, 뿌리와 싹이 언제 나오는지 날짜를 적어 보세요. 고구마에 모아 둔 녹말을 쓰며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맛을 비교할 때는 같은 사람이 같은 크기로 잘라 먹어 보는 것이 좋아요. 한 번 맛보고 끝내지 말고 가족 여러 명이 함께 맛본 뒤, 누가 어느 쪽을 더 달다고 했는지 표로 정리해 보세요.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예요.

불을 쓰거나 뜨거운 음식을 만질 때는 꼭 어른과 함께해요. 가을이 주는 달콤함 속에는 식물이 겨울과 봄을 준비하는 과학이 숨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