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속에 늘 있는 연필. 너무 익숙해서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별로 없지요. 하지만 연필 한 자루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사람들의 궁리가 담겨 있어요. 검은 돌 한 덩이가 어떻게 지우개 달린 연필이 되었는지, 연필의 긴 여행을 따라가 볼까요?

시작은 검은 돌 한 덩이

16세기 무렵, 영국 북쪽의 보로데일이라는 산골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검은 덩어리를 발견했어요. 손에 쥐고 문지르면 까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지요. 양치기들은 이 덩어리로 양에게 표시를 하기도 했다고 해요.

이 검은 돌이 바로 흑연이에요. 그때 사람들은 흑연을 납의 한 종류라고 잘못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말 '연필'에도 납을 뜻하는 한자 '연(鉛)'이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연필심에는 납이 들어 있지 않아요. 흑연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에요.

'흑연'을 영어로는 '그래파이트'라고 해요. 18세기 끝 무렵 한 독일 학자가 그리스말로 '쓰다'라는 뜻의 낱말에서 따와 붙인 이름이에요. 이름부터 글씨를 쓰는 돌이라는 뜻이지요.

흑연은 왜 종이에 묻어날까요?

흑연을 아주 크게 확대해 보면, 탄소 알갱이들이 벌집 모양으로 이어진 얇은 판이 여러 겹 포개져 있어요. 판과 판 사이는 서로 약하게 붙어 있어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미끄러지듯 떨어져요. 연필로 종이를 긋는 순간, 이 얇은 판들이 조금씩 벗겨져 종이 결 사이에 남아요.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연필 자국이에요.

신기하게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도 흑연과 같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다이아몬드는 탄소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단단하게 붙들고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 가운데 하나가 되었어요. 똑같은 탄소인데도 어떻게 늘어서 있느냐에 따라 하나는 무른 연필심, 하나는 단단한 보석이 되는 거예요.

손이 까매지는 문제

흑연은 글씨를 쓰기에는 좋았지만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무르고 잘 부서져서, 손에 쥐고 쓰면 손가락이 까맣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흑연 막대에 실을 감거나 천으로 싸서 써 보았어요. 그러다가 흑연 막대를 나무 속에 끼워 넣는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이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지요.

보로데일의 흑연은 아주 질이 좋아서 귀한 대접을 받았어요. 흑연이 대포알을 만드는 틀에도 쓰였기 때문에, 광산을 지키고 흑연을 함부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해요. 좋은 흑연은 한정되어 있는데 연필을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지요. 연필을 더 많이, 더 싸게 만들 방법이 필요해졌어요.

연필이 걸어온 길

연필과 지우개의 역사

  • 16세기 무렵 영국 보로데일에서 질 좋은 흑연 덩어리가 발견돼요.
  • 1770년 영국의 과학자 프리스틀리가 고무로 연필 자국을 지울 수 있다고 소개해요.
  • 1795년 프랑스의 콩테가 흑연 가루와 점토를 섞어 굽는 방법을 내놓아요.
  • 1858년 미국에서 지우개를 붙인 연필이 특허를 받아요.
  • 오늘날 여러 나라의 공장에서 한 해에 셀 수 없이 많은 연필이 만들어져요.

흑연과 점토를 섞어 굽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어요. 질 좋은 흑연 덩어리는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18세기 끝 무렵, 프랑스의 발명가 콩테가 좋은 방법을 내놓았어요. 그 무렵 프랑스는 전쟁 때문에 영국의 흑연을 구하기 어려웠거든요. 흑연을 곱게 가루로 만들어 점토와 섞은 다음, 가늘게 뽑아 불에 굽는 방법이에요. 구운 심은 단단해져서 잘 부러지지 않고, 가루도 덜 묻어났어요.

이 방법에는 놀라운 장점이 있었어요. 흑연과 점토를 섞는 비율을 바꾸면 심의 경도, 곧 단단한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거든요. 점토를 많이 넣으면 단단하고 연한 색으로 쓰이고, 흑연을 많이 넣으면 무르고 진하게 쓰여요. 연필에 적힌 H와 B가 바로 이것을 나타내요. H는 단단하고 흐린 연필, B는 무르고 진한 연필이에요. 둘의 중간쯤이 HB예요.

H는 영어로 단단하다는 뜻의 낱말에서, B는 검다는 뜻의 낱말에서 앞 글자를 땄다고 알려져 있어요. 앞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그 성질이 더 강해요. 2B보다 4B가 더 무르고 진하며, 2H보다 4H가 더 단단하고 흐려요. 글씨를 쓸 때는 HB나 B를 많이 쓰고, 미술 시간에 그림자를 진하게 칠할 때는 4B처럼 무른 연필을 써요. 설계도처럼 가늘고 또렷한 선이 필요할 때는 H 연필을 쓰지요.

연필 한 자루가 태어나기까지

연필 만드는 차례

  1. 흑연 가루와 점토에 물을 섞어 반죽해요.
  2. 반죽을 가는 구멍으로 밀어내 국수처럼 길게 뽑고, 알맞은 길이로 잘라 말려요.
  3. 말린 심을 아주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 단단하게 만들어요.
  4. 구운 심에 기름이나 밀랍을 스며들게 해 부드럽게 써지도록 해요.
  5. 홈을 판 나무판에 심을 눕히고, 다른 나무판을 덮어 붙인 뒤 잘라서 깎고 칠해요.

나무 두 쪽 사이에 심을

오늘날 연필은 어떻게 만들까요? 먼저 향나무처럼 결이 고운 나무를 얇은 판으로 잘라요. 판에 기다란 홈을 여러 줄 파고, 홈마다 연필심을 하나씩 눕혀요. 그 위에 홈을 판 판을 한 장 더 덮어 풀로 단단히 붙여요. 샌드위치처럼 심이 나무 두 쪽 사이에 끼는 거예요.

풀이 마르면 이 판을 연필 한 자루씩 잘라 내고, 육각형이나 동그란 모양으로 깎아요. 겉에 색을 칠하면 연필이 완성돼요.

연필에 쓰는 나무는 아무 나무나 되지 않아요. 너무 단단하면 연필깎이로 깎기 힘들고, 너무 무르면 쉽게 부서지거나 결이 일어나요. 그래서 향나무처럼 결이 곧고 알맞게 무른 나무를 골라 써요. 연필을 깎을 때 나는 은은한 나무 냄새는 이 나무에서 나는 향이에요.

그런데 연필은 왜 육각형이 많을까요? 동그란 연필은 책상에 올려놓으면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기 쉬워요. 모서리가 있는 육각형은 잘 구르지 않지요. 게다가 엄지, 검지, 가운뎃손가락 세 손가락으로 쥐기에도 편해요. 작은 모양 하나에도 쓰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들어 있어요. 연필을 깎은 끝을 가만히 보면, 나무에 가운데로 이어진 줄이 보이기도 해요. 두 쪽을 붙인 자국이에요.

칼에서 연필깎이로

옛날에는 연필을 칼로 깎았어요. 나무를 조금씩 저며 내고 심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 일은 꽤 솜씨가 필요했지요. 19세기 중반 무렵 프랑스에서 연필을 구멍에 넣고 돌려 깎는 연필깎이가 나오면서 누구나 쉽게 연필을 깎을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손잡이를 돌리는 연필깎이, 전기로 움직이는 연필깎이, 주머니에 넣는 작은 연필깎이까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연필깎이 속을 들여다보면 비스듬히 달린 칼날이 보여요. 연필을 돌리면 칼날이 나무와 심을 원뿔 모양으로 얇게 깎아 내요. 깎을 때 나오는 돌돌 말린 나무 부스러기를 모아 보면, 연필 한 자루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어요. 칼날은 날카로우니 손가락을 넣지 않도록 조심해요.

지우개가 연필 머리에 올라타다

틀린 글씨를 지울 때 옛날 사람들은 빵 조각을 쓰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다 고무가 연필 자국을 잘 지운다는 사실이 알려졌어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연필 끝에 지우개를 붙인 연필이 나왔어요. 연필과 지우개를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니 무척 편했지요. 지금은 얇은 쇠 띠로 지우개를 연필 끝에 감싸 고정해요.

지우개는 어떻게 연필 자국을 지울까요? 종이에 남은 흑연 가루는 종이 결에 살짝 걸려 있을 뿐이에요. 지우개로 문지르면 흑연 가루가 종이보다 지우개에 더 잘 달라붙어서, 지우개 부스러기와 함께 떨어져 나가요. 까맣게 변한 지우개 가루를 보면 흑연을 품고 떠난 것을 알 수 있지요. 영어로 지우개를 '러버'라고도 부르는데, 고무로 '문질러' 지운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에요.

연필 선에 전기가 흘러요

흑연에는 놀라운 성질이 하나 더 있어요. 흑연은 돌처럼 생겼지만 금속처럼 전기가 통해요. 그래서 종이에 4B처럼 진한 연필로 굵은 선을 여러 번 칠하면, 그 선을 따라 아주 약한 전기가 흐를 수 있어요.

건전지 두세 개를 이어 끼운 전지 끼우개와 발광 다이오드(LED), 집게 전선이 있다면 실험해 볼 수 있어요. 진하게 칠한 연필 선의 두 끝에 전선을 대면 불빛이 희미하게 켜져요. 선을 짧게 하면 불빛이 더 밝아지고, 길게 하면 어두워지지요. 실험은 꼭 선생님이나 어른과 함께하고, 집의 콘센트 전기는 절대로 쓰지 않아요.

색연필과 샤프는 어떻게 다를까요?

색연필도 연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심이 달라요. 색연필 심은 흑연 대신 색을 내는 가루에 밀랍 같은 재료를 섞어 굳혀 만들어요. 연필심처럼 뜨거운 가마에 굽지 않기 때문에, 굽는 동안 색이 변하지 않고 알록달록한 색을 그대로 낼 수 있어요. 대신 연필심보다 무르고 지우개로 잘 지워지지 않지요.

샤프펜슬(샤프)은 깎지 않고 가는 심을 조금씩 밀어내 쓰는 필기구예요. 심이 늘 같은 굵기라서 가늘고 고른 글씨를 쓰기 좋아요. 하지만 심이 가늘어 힘을 세게 주면 잘 부러져요. 글씨 연습을 시작하는 어린이에게 연필을 권하는 까닭은,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 쓰면서 손힘과 바른 글씨 모양을 기르기 좋기 때문이에요.

우주에서도 연필을 쓸까요?

'우주에서는 볼펜 잉크가 잘 나오지 않으니 연필을 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그런데 연필도 우주에서는 조심해서 써야 해요. 무게를 느끼지 않는 우주선 안에서는 부러진 심 조각과 흑연 가루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둥둥 떠다녀요. 이것이 눈에 들어가거나 기계 틈에 들어가면 곤란하지요.

그래서 우주 비행사를 위해 우주에서도 잉크가 잘 나오도록 만든 특별한 펜이 따로 개발되기도 했어요. 땅 위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연필 가루 하나도 우주에서는 고민거리가 된다니, 과학자들은 정말 작은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군요.

연필을 바르게 쥐어 봐요

연필을 오래 써도 손이 덜 아프려면 바르게 쥐는 것이 중요해요. 엄지와 검지로 연필을 가볍게 잡고, 가운뎃손가락으로 아래를 받쳐요. 연필 끝에서 손가락 한두 마디쯤 떨어진 곳을 잡으면 알맞아요. 너무 끝을 잡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고, 너무 뒤를 잡으면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요.

손에 너무 힘을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연필을 꽉 쥐고 꾹꾹 누르면 손목과 어깨까지 금방 뻐근해져요. 글씨를 쓰다 손이 아프면 잠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쉬어 가세요.

몽당연필도 소중해요

연필을 쓰다 보면 짧아져서 손에 쥐기 힘든 몽당연필이 돼요. 그렇다고 바로 버리지 말고, 몽당연필 깍지를 끼워 보세요. 짧은 연필 끝에 깍지를 끼우면 다시 긴 연필처럼 쓸 수 있어요. 다 쓴 볼펜 몸통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는 사람도 있어요.

연필 한 자루를 만들려면 나무와 흑연, 점토, 물감과 많은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요. 끝까지 아껴 쓰면 나무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지요. 우리 반에서 가장 짧은 몽당연필 대회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연필, 큰 발명

연필은 한 번 깎으면 꽤 오래 쓸 수 있고, 물에 젖어도 글씨가 잘 번지지 않아요. 전기도 필요 없지요. 흑연은 햇빛을 받아도 색이 잘 바래지 않아서, 연필로 쓴 글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목수는 나무에 자를 곳을 표시할 때, 화가는 그림의 밑그림을 그릴 때, 과학자는 야외에서 관찰 기록을 남길 때 연필을 즐겨 써요. 날씨가 추워도, 종이를 거꾸로 들고 써도 잘 써진다는 것도 연필의 좋은 점이에요. 오늘 필통 속 연필을 꺼내 육각형 모서리와 나무의 줄무늬, 심의 H와 B를 찬찬히 살펴보세요. 흔한 물건 속에서 발명가들의 생각이 보일 거예요.

연필의 역사를 보면, 발명은 한 사람이 한순간에 해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검은 돌을 처음 발견한 사람, 나무에 끼워 넣은 사람, 점토와 섞어 구운 사람, 지우개를 붙인 사람이 저마다 앞사람의 생각에 한 가지씩 더했지요. 여러분도 쓰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다면 공책에 적어 보세요. 그 불편함이 다음 발명의 시작이 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