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림은 멀리서 한 번 보고 지나치기 쉬워요.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지요. 오늘은 조선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씨름」을 함께 읽어 봐요. 그림 한 장을 오래 보는 방법을 알면, 미술관에 가거나 교과서를 넘길 때 옛 그림이 훨씬 재미있어질 거예요.

김홍도는 누구일까요?

김홍도는 조선 후기,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에 활동한 화가예요. 호는 '단원'이라서 '단원 김홍도'라고도 불러요. 김홍도는 산수화, 신선 그림, 동물 그림 등 여러 가지를 잘 그렸는데, 특히 보통 사람들이 일하고 노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해요. 「씨름」은 김홍도의 풍속화를 모은 화첩에 들어 있는 그림이고, 보물로 지정되어 소중히 보관되고 있어요.

김홍도는 어릴 때부터 그림 솜씨가 뛰어났어요. 이름난 선비 화가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고, 나라의 그림 일을 맡아 보던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어요. 화원은 임금의 얼굴을 그리는 일, 궁궐 행사를 기록하는 일처럼 나라에 필요한 그림을 그렸어요. 김홍도는 정조 임금에게 솜씨를 인정받아 중요한 그림 일을 여러 번 맡았다고 해요.

보통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다

조선 전기의 그림은 대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 매화나 대나무 같은 식물, 옛이야기 속 인물을 그린 것이 많았어요. 선비들은 그림을 보며 마음을 맑게 하고 뜻을 새기려 했거든요. 밭을 가는 농부나 장터의 장사꾼은 그림의 주인공으로 잘 등장하지 않았어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달라졌어요. 농사와 장사가 활발해지고 사람들의 생활에 관심이 커지면서, 이웃의 평범한 하루를 그린 풍속화가 많이 그려졌어요. 김홍도는 그 한가운데에 있던 화가예요. 땀 흘려 일하고 크게 웃으며 노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화첩 속 친구 그림들

「씨름」이 들어 있는 화첩은 흔히 『단원 풍속도첩』이라고 불러요. 이 화첩에는 「씨름」 말고도 여러 장의 풍속화가 함께 묶여 있어요. 훈장님 앞에서 훌쩍이는 아이가 나오는 「서당」, 풍물 소리에 맞춰 아이가 춤을 추는 「무동」, 대장장이들이 쇠를 두드리는 「대장간」,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그린 「빨래터」 같은 그림이에요.

그림마다 크기가 크지 않고, 배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사람들의 모습만 쏙 뽑아 담았지요. 그래서 화첩을 한 장씩 넘기면 조선 사람들의 하루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구경하는 기분이 들어요. 「씨름」을 다 읽고 나면 다른 그림들도 찾아서 같은 방법으로 읽어 보세요.

가운데를 비워 둔 둥근 자리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어요. 그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이 서로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고 있지요. 구경꾼들이 원을 이루니까 우리 눈길도 저절로 가운데 씨름꾼에게 모여요. 이렇게 사람을 어디에 둘지 짜는 것을 구도라고 해요.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어요. 나무도, 집도, 산도 없어요. 배경을 그리지 않고 여백으로 비워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훨씬 또렷하게 보여요.

구경꾼들은 한 줄로 빽빽하게 앉지 않고 몇 무리로 나뉘어 있어요. 사람들을 꽉 채우지 않고 군데군데 숨 쉴 틈을 남겨 두어서 그림이 답답하지 않아요.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서 있는 엿장수 아이는 그림에 작은 쉼표 같은 역할을 해요. 모두가 씨름판에 빠져 있는데 이 아이만은 씨름보다 다른 데 마음이 가 있는 것 같아서 눈길이 한 번 더 머물지요.

구경꾼 표정을 하나씩 읽어 봐요

이 그림의 재미는 구경꾼들에게 있어요. 누구는 입을 벌리고 몸을 앞으로 내밀고, 누구는 무릎을 끌어안고 느긋하게 앉아 있어요. 바닥에 벗어 놓은 신발도 보여요. 씨름이 얼마나 신나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한쪽 구경꾼들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히고 있어요. 씨름꾼이 곧 그쪽으로 넘어질 것 같아서예요. 그림은 멈춰 있지만,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게 만들지요. 마치 사진기로 가장 신나는 순간을 딱 찍은 것 같아요.

씨름꾼들의 얼굴도 살펴보세요. 한 사람은 이를 악물고 힘을 주는 것 같고, 다른 한 사람은 당황한 듯 눈썹이 올라가 있어요. 누가 이기고 있는지 얼굴에서 먼저 드러나지요.

구경꾼들의 차림새와 앉은 모양도 저마다 달라요. 갓을 쓴 어른, 머리를 땋은 아이, 다리를 쭉 뻗은 사람, 쪼그려 앉은 사람이 섞여 있어요. 이런 작은 차이를 찾아내면 구경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이야기를 지어 볼 수 있어요.

붓 선 몇 번으로 살아 움직여요

그림 속 사람들을 가까이 보면 선이 아주 시원시원해요. 옷 주름은 굵고 빠르게, 얼굴과 손은 가늘고 조심스럽게 그렸어요. 선을 여러 번 덧그리지 않고 붓을 한 번에 쓱 움직인 느낌이 나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일어나 소리칠 것처럼 생생해 보여요.

색깔도 많이 쓰지 않았어요. 먹의 진하고 옅은 차이에 옅은 물감을 살짝 더했을 뿐이에요.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몸짓만으로 그림이 꽉 찬 느낌을 주어요. 적게 그리고도 많은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김홍도 그림의 힘이에요.

씨름은 어떤 놀이였을까요?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놀이예요. 샅바는 허리와 다리에 둘러매는 긴 천이에요. 발바닥 말고 몸의 다른 곳이 먼저 땅에 닿으면 져요. 힘만 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힘을 이용해 넘어뜨리는 기술이 중요하지요.

씨름은 명절이나 장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놀이였어요. 특히 단오와 추석 무렵에는 씨름판이 크게 벌어지곤 했지요. 여러 사람을 차례로 이긴 마지막 승자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와요. 마을 사람 모두가 구경꾼이 되어 응원하던, 온 마을의 잔치였던 셈이에요.

추석은 한 해 농사를 거두어들이는 때라서 먹을 것이 넉넉하고 마음도 넉넉했어요. 여름 내내 논밭에서 일하며 힘을 기른 젊은이들은 씨름판에서 솜씨를 뽐냈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한 해의 수고를 잊었지요. 씨름에서 지더라도 다시 샅바를 고쳐 매고 다음 판을 기다리면 되니, 이기고 지는 것보다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한 놀이였어요. 다음 명절에 가족과 함께 씨름 대회를 본다면 김홍도의 그림 속 구경꾼들을 떠올려 보세요.

알아 두기

씨름은 2018년에 남한과 북한이 함께 신청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었어요. 남북이 함께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유산이에요. 오늘날에도 명절이면 텔레비전에서 씨름 대회를 볼 수 있어요.

씨름판에서 들리는 소리를 상상해요

그림에는 소리가 없지만, 귀를 기울이듯 보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씨름꾼이 숨을 몰아쉬는 소리, 발이 흙을 긁는 소리, "넘어간다!" 하고 외치는 구경꾼의 목소리, 엿장수 아이가 엿판을 흔드는 소리까지요. 몸을 뒤로 젖힌 구경꾼은 "어이쿠!" 하고 외쳤을지도 몰라요.

씨름판에서 쓰는 기술에도 재미있는 이름이 많아요. 상대를 배 위로 들어 올려 돌리는 배지기, 다리를 상대 다리 안쪽에 걸어 넘기는 안다리걸기, 바깥쪽에 걸어 넘기는 밭다리걸기 같은 것이에요. 그림 속 두 씨름꾼이 어떤 기술을 쓰고 있을지 몸 모양을 보고 짐작해 보세요. 정답은 모르지만, 짐작하는 동안 그림을 더 오래, 더 꼼꼼하게 보게 된답니다.

조선 사람들의 생활이 보여요

구경꾼 사이에는 목에 엿판을 메고 서 있는 아이도 있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엿장수가 찾아왔던 모양이에요. 갓을 쓴 어른부터 아이까지 여러 사람이 한데 섞여 있어요.

그 시절에는 사진도, 텔레비전도 없었어요. 그래서 풍속화는 옛사람들의 하루를 오늘날까지 전해 주는 귀한 기록이 되었어요. 그림 한 장으로 그 시절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떻게 놀고, 무엇을 사 먹었는지 알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찍는 운동회 사진도 먼 훗날에는 이런 기록이 될지 몰라요.

김홍도와 신윤복, 두 풍속화가

조선 후기에는 풍속화를 그린 화가가 또 있어요. 호가 '혜원'인 신윤복이에요. 두 사람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느낌이 꽤 달라요. 김홍도는 논밭과 장터, 마을에서 일하고 노는 보통 사람들을 즐겨 그렸고, 배경을 비우고 사람의 몸짓에 집중했어요.

신윤복은 도시의 멋쟁이들과 여인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어요. 색을 곱고 화사하게 쓰고, 담장이나 나무 같은 배경도 꼼꼼하게 그려 넣었지요. 같은 시대를 그렸는데도 화가마다 눈길이 머무는 곳이 달랐던 거예요. 두 화가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서 나는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림 읽기, 이런 것이 궁금해요

옛 그림은 어디서부터 보면 좋을까요?

먼저 그림 전체를 한 번 훑어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을 찾아요. 「씨름」이라면 가운데 씨름꾼이지요. 그다음에 가장자리의 사람들을 한 명씩 살펴보면 돼요.

그림에 글씨나 도장이 있는 까닭은요?

옛 화가들은 그림 한쪽에 자기 호를 쓰거나 도장을 찍어 누가 그렸는지 남겼어요. 글씨와 도장도 그림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서, 어디에 두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진짜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단원 풍속도첩』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어요. 옛 그림은 빛에 약해서 늘 전시하지는 않으니, 가기 전에 전시 소식을 알아보세요.

오늘을 그리는 풍속화

풍속화는 옛날에만 있는 그림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리면 그것이 바로 오늘의 풍속화예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는 학생들,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는 아이들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몇백 년 뒤의 어린이들은 그 그림을 보며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살았구나!" 하고 신기해할 거예요.

김홍도처럼 그려 보고 싶다면 배경은 과감히 비우고 사람들의 몸짓에 집중해 보세요. 가장 신나는 순간 하나를 골라, 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저마다 다르게 그려 넣는 거예요. 누구는 웃고, 누구는 놀라고, 누구는 딴청을 부리게요.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아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그림에 담기면 충분해요.

나도 그림 읽기를 해 봐요

「씨름」은 인터넷이나 미술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해 보세요.

  • 구경꾼 한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말풍선을 붙여 보세요.
  • 두 씨름꾼 가운데 누가 이길지,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그림에서 찾아보세요.
  • 우리 반 운동회를 김홍도처럼 그린다면 누구를 어디에 둘지 생각해 보세요.

그림 읽기에는 정답이 없어요. 친구와 같은 그림을 보고 서로 찾은 것을 이야기해 보면, 내가 못 본 것을 친구가 찾아내기도 해요. 오래 볼수록, 함께 볼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보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