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뜽, 따당, 뜨으응." 가야금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나요? 맑게 튕겨 나오다가 끝에서 살짝 흔들리며 사라지는 소리예요. 오늘은 우리 전통 악기 가야금을 가까이 들여다봐요.
기다란 나무 위에 걸린 열두 줄
가야금은 길쭉한 나무 상자처럼 생겼어요. 몸통은 주로 오동나무로 만들어요. 오동나무는 가볍고 속이 부드러워서 소리가 잘 울려요. 몸통 속이 비어 있어서, 줄을 튕기면 그 떨림이 나무 전체로 퍼져 소리가 커지지요.
전통 가야금에는 줄이 열두 개 있어요. 줄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여러 가닥 꼬아서 만들어요. 명주실 줄은 쇠줄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내요.
열두 줄은 굵기가 저마다 달라요. 연주하는 사람 쪽에서 멀리 있는 줄이 굵고, 가까운 줄로 올수록 가늘어져요. 굵은 줄은 낮은 소리를, 가는 줄은 높은 소리를 내지요. 줄의 한쪽 끝은 몸통 머리 쪽에 걸려 있고, 다른 쪽 끝은 '부들'이라고 부르는 굵은 무명실 고리에 이어져 있어요. 부들이 꼬리처럼 늘어진 모습도 가야금만의 멋이에요.
가야금의 몸 구석구석
- 몸통 오동나무로 만든 긴 울림통이에요.
- 줄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열두 줄이에요.
- 안족 줄을 받치는 기러기발, 음높이를 맞춰요.
- 부들 줄 끝을 잇는 무명실 고리예요.
가야금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가야금을 만드는 일은 오랜 기다림에서 시작돼요. 베어 낸 오동나무를 곧바로 쓰지 않고, 몇 해 동안 밖에 두고 비와 바람, 햇볕을 맞히며 말린다고 해요. 그래야 나무 속의 물기와 진이 빠져서 뒤틀리지 않고 소리가 맑게 울리거든요.
잘 마른 나무를 깎고 다듬어 울림통을 만들고, 명주실을 여러 가닥 모아 꼬아서 굵기가 다른 줄 열두 개를 만들어요. 줄을 걸고 안족을 세운 뒤, 소리를 들어 가며 하나하나 음을 맞추어야 가야금 한 대가 완성돼요. 이렇게 악기를 만드는 장인을 '악기장'이라고 불러요.
기러기가 줄을 받치고 있어요
줄 아래를 보면 작은 받침이 하나씩 서 있어요. 이것을 안족이라고 해요. 모양이 기러기 발을 닮아서 '기러기발'이라고도 불러요.
안족은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일을 해요. 안족을 옮기면 줄이 울리는 길이가 달라져 소리가 바뀌거든요. 기타의 줄을 조이고 푸는 것과 비슷한 일이에요.
줄이 소리를 만드는 원리
줄을 튕기면 줄이 아주 빠르게 떨려요. 이 떨림이 공기를 흔들어 우리 귀에 소리로 들어와요. 줄이 빨리 떨릴수록 높은 소리가, 천천히 떨릴수록 낮은 소리가 나요. 그런데 줄이 떨리는 빠르기는 세 가지에 따라 달라져요.
첫째는 줄의 길이예요. 울리는 부분이 짧을수록 빨리 떨려 높은 소리가 나요. 안족을 옮기면 소리가 바뀌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지요. 둘째는 줄의 굵기예요. 가는 줄일수록 높은 소리가 나요. 셋째는 줄이 얼마나 팽팽한지예요. 팽팽하게 당길수록 소리가 높아져요. 고무줄을 손가락에 걸고 당기면서 튕겨 보면 이 원리를 직접 느낄 수 있어요.
줄만 떨리면 소리가 아주 작아요. 줄의 떨림이 안족을 타고 속이 빈 오동나무 몸통으로 전해지면, 몸통 전체가 함께 울리면서 소리가 크고 풍성해져요. 가야금의 몸통은 소리를 키우는 커다란 확성기인 셈이에요.
뜯고, 튕기고, 떨리게
가야금은 바닥에 앉아서 연주해요. 활이나 채를 쓰지 않고 맨손가락으로 연주해요.
오른손은 소리를 만들어요. 줄을 손가락으로 뜯거나, 손톱 쪽으로 튕기거나, 두 줄을 한꺼번에 울리기도 해요. 왼손은 안족 너머의 줄을 누르거나 흔들어요. 그러면 소리가 떨리기도 하고, 높아졌다가 낮아지기도 해요. 이렇게 소리를 떨게 하고 높낮이를 바꾸는 연주법을 농현이라고 해요. 가야금 소리가 노래하듯 들리는 까닭이 바로 농현이에요.
가야금을 연주할 때는 몸통 머리 쪽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꼬리 쪽은 바닥에 비스듬히 내려놓아요. 오랫동안 줄을 뜯다 보면 손가락 끝이 아프고 굳은살이 생긴다고 해요. 명주실 줄을 맨손가락으로 연주하기 때문이에요. 연주자들은 이 굳은살을 오랜 연습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해요.
크고 느린 가야금, 작고 빠른 가야금
열두 줄 가야금에도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정악가야금이에요. 몸통이 크고 줄 사이가 넓어서, 궁중이나 선비들이 즐기던 느리고 점잖은 음악을 연주할 때 써요. 소리가 깊고 묵직하지요. 정악가야금은 꼬리 끝이 양의 귀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모양인데, 이 부분을 '양이두'라고 불러요. 몸통도 오동나무 한 덩이를 통째로 파내어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하나는 산조가야금이에요. 정악가야금보다 작고 줄 사이가 좁아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기 좋아요. 오늘날 열두 줄 가야금 가운데 공연장에서 더 자주 보는 것은 산조가야금이에요.
산조가야금은 앞판과 뒤판을 따로 만들어 붙여요. 앞판은 소리가 잘 울리는 오동나무로, 뒤판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요. 양이두 없이 꼬리가 단순한 모양이라서, 두 가야금을 나란히 놓으면 꼬리 모양만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산조가야금이라는 이름은 산조라는 음악에서 왔어요. 산조는 느린 가락으로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음악으로, 연주자 한 사람이 장구 반주에 맞추어 혼자 연주해요. 19세기 끝 무렵 김창조라는 음악가가 가야금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처음에는 천천히 흐르는 강물 같다가, 끝에서는 소나기처럼 빠르게 몰아쳐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지요.
줄이 늘어난 가야금
요즘에는 줄이 열두 개보다 많은 가야금도 있어요. 열여덟 줄, 스물한 줄, 스물다섯 줄 가야금 같은 것이에요. 줄이 많아지면 더 높고 낮은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서양 음악이나 대중가요도 연주하기 쉬워요. 특히 스물다섯 줄 가야금은 명주실 대신 나일론을 감은 줄을 쓰는 경우가 많고, 여럿이 함께하는 합주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 가야금 | 줄 수 | 특징 |
|---|---|---|
| 정악가야금 | 12줄 | 몸통이 크고 소리가 깊어요. 느리고 점잖은 음악에 써요. |
| 산조가야금 | 12줄 | 조금 작고 줄 사이가 좁아요. 빠른 가락에 알맞아요. |
| 개량 가야금 | 18줄, 21줄, 25줄 등 | 낼 수 있는 소리가 많아 여러 음악을 연주해요. |
줄이 많은 가야금으로 가요나 영화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을 찾아 들어 보세요. 익숙한 노래가 가야금 소리로 들리면 무척 새롭게 느껴질 거예요. 옛 악기가 오늘의 음악과 만나며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 셈이에요.
가야금과 우륵 이야기
가야금이라는 이름에는 옛 나라 이름이 들어 있어요. 삼국 시대에 한반도 남쪽에 있던 가야예요. 옛 역사책에는 가야의 가실왕이 이 악기를 만들게 하고, 음악가 우륵에게 곡을 짓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와요.
가야는 낙동강 둘레에 있던 여러 작은 나라가 모인 연맹이었어요. 좋은 쇠를 많이 만들어 이웃 나라와 바다 건너까지 팔 만큼 솜씨가 뛰어났지요. 가실왕은 나라마다 말이 다르니 음악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우륵은 가야금을 위해 열두 곡을 지었는데, 곡 이름에는 가야 여러 지방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고 전해져요. 흩어진 마을들의 노래를 가야금 한 대에 모은 셈이에요.
그 뒤 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신라로 갔다고 해요. 신라의 진흥왕은 우륵의 음악을 귀하게 여겨, 세 사람을 보내 우륵의 음악을 배우게 했다고 전해져요. 『삼국사기』에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이 계고, 법지, 만덕이라고 적혀 있어요. 세 사람은 각각 가야금, 노래, 춤을 배웠다고 해요. 가야는 사라졌지만 가야의 악기는 신라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셈이에요.
충청북도 충주에는 '탄금대'라는 곳이 있어요. '탄금'은 가야금을 탄다, 곧 연주한다는 뜻이에요.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와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오래된 이름 하나에도 옛 음악가의 이야기가 숨어 있지요.
일본의 오래된 보물 창고인 쇼소인에는 '신라금'이라고 불리는 가야금이 전해 와요. 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보관된 악기예요. 그 무렵에도 가야금이 바다 건너까지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귀한 흔적이에요.
가야금의 이웃 악기들
가야금처럼 긴 몸통에 줄을 걸고 뜯어서 연주하는 악기는 이웃 나라에도 있어요. 중국의 쟁(구정), 일본의 고토, 베트남의 단짜인이 가야금과 닮은 친척 악기예요.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줄의 수와 재료, 연주법이 조금씩 달라요. 줄 받침을 옮겨 음높이를 맞추는 방법은 서로 닮았지요.
우리나라에는 가야금과 자주 비교되는 거문고도 있어요. 거문고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악기로, 줄이 여섯 개예요. 손가락이 아니라 '술대'라는 가느다란 막대로 줄을 내리치거나 뜯어서 소리를 내요. 가야금 소리가 맑고 부드럽다면, 거문고 소리는 낮고 굵고 힘차요.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곁에 두고 마음을 닦는 악기로 아꼈어요.
노래하며 연주하는 가야금 병창
가야금은 혼자 연주하기도 하고, 여러 악기와 함께 합주하기도 해요. 그런데 가야금 연주자가 직접 노래까지 부르는 방법도 있어요. 가야금을 뜯으며 스스로 노래를 곁들이는 것을 '가야금 병창'이라고 해요. 손으로는 가락을 뜯고, 입으로는 노랫말을 부르니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셈이지요.
가야금 병창에서는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민요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가야금 소리와 사람 목소리가 주고받듯 어우러지면, 한 사람이 들려주는 작은 공연이 돼요.
가야금을 새롭게 연주한 사람들
가야금은 옛날 음악만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에요. 20세기에 들어 가야금으로 새로운 곡을 짓는 음악가들이 나타났어요. 그 가운데 황병기는 가야금을 위한 새 곡을 많이 지은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옛 가락의 멋을 살리면서도 지금 사람들의 귀에 새롭게 들리는 음악을 만들었지요.
요즘에는 가야금 연주자들이 피아노, 기타, 전자 악기와 함께 공연하기도 해요. 가야금으로 연주한 유명한 노래 영상이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으기도 하지요. 천오백 년쯤 이어져 온 악기가 오늘도 새로운 소리를 찾고 있어요.
상자로 만드는 고무줄 가야금
집에서 가야금의 원리를 흉내 낸 악기를 만들어 볼 수 있어요. 뚜껑 없는 빈 상자나 휴지 상자에 굵기가 다른 고무줄 서너 개를 길게 걸어요. 그다음 연필이나 나무젓가락을 고무줄 아래에 끼워 받침을 세우면 준비 끝이에요. 이 받침이 가야금의 안족 역할을 해요.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받침을 이쪽저쪽으로 옮겨 보세요. 울리는 부분이 짧아지면 소리가 높아지고, 길어지면 낮아지는 것을 들을 수 있어요. 굵은 고무줄과 가는 고무줄의 소리도 비교해 보세요. 상자가 없을 때와 있을 때 소리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들어 보면, 가야금 몸통이 왜 속이 비어 있는지도 알 수 있어요.
가을밤에 가야금 한 곡
달 밝은 가을밤에 가야금 연주를 한 곡 찾아 들어 보세요. 눈을 감고 오른손이 뜯는 소리와 왼손이 떨게 하는 소리를 나누어 들어 보면, 줄 열두 개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산조를 듣는다면 음악이 언제부터 빨라지는지 귀 기울여 보세요. 처음의 느린 가락과 마지막의 빠른 가락은 무엇이 다른지, 들으면서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보아도 좋아요. 가까운 국악 공연장이나 박물관에서는 가야금을 직접 만져 보는 체험을 열기도 하니, 기회가 되면 명주실 줄을 손끝으로 뜯어 보세요. 손끝에서 울리는 떨림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거예요.
